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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는 ‘월가 권리장전’
[Special Report Ⅱ] 한-미 FTA 쟁점 해부
[20호] 2011년 12월 01일 (목) 이해영 economyinsight@hani.co.kr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

   
지난 11월17일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며 집결해 있다.
공익을 대표해야 하는 국가를 기본적으로 사인들 간의 분쟁 해결 방식인 중재에 ‘강제’ 회부하는 것을 통해, 국가를 사익 추구자인 투자자 지위로 격하시키는 것이 ISD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강제인 이유는, 한-미 FTA상 ISD의 경우 국가는 이미 중재 절차에 ‘사전동의’ 또는 ‘자동동의’(제11.17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선택권 없이도 투자자가 소송하면 무조건 세계은행의 중재법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끌려가야 한다.
정부는 “세계은행이 중립적이며, 공정하고 투명한 제3의 기구”라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세계은행은 미국의 지분이 17%를 차지하는 등 사실상 미국이 대주주다. 세계은행 총재는 언제나 미국 차지다.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더불어 제3세계 국가에 자금 지원을 대가로 구조조정을 강요해왔다. 이처럼 강요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그 산하기관인 ICSID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지, 공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아니다. 더군다나 한-미 FTA상 ISD는 한-미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중재인 3명 가운데 의장이 되는 중재인을 ICSID의 사무총장이 지명하게끔 되어 있다. 문제는 사무총장이 ICSID의 운영위원회 의장, 즉 세계은행 총재의 지휘하에 있다는 것이다.
ISD는 어떤 협정문상의 특정 조항이기보다는 하나의 절차 규율이자 시스템으로 간주해야 한다. 미국의 투자·금융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ISD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 곧 돈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 경제의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할 때, ISD는 보편적 지위를 갖는 경제법이자 사실상 헌법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절차법인 셈이다.

미국이 중재인 ‘셋 중 둘’ 사실상 지명
한-미 FTA 발효 전에 론스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한-미 FTA 체제하에서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면 론스타는 십중팔구 이 대법원 판결을 ISD에 따라 ICSID에 제소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막대한 투자 이익 송금을 제한한 것은 협정문 부속서 11-사 송금, 즉 ‘금융세이프가드 조항’ 제2항 나호에서 금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에 해당된다. 이런 자금에 대해 협정문은 어떤 송금 제한 조치도 취할 수 없도록 한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투기성 자금이지만, 법률상으로는 외국인 직접투자로 분류되고, 심지어 한-미 FTA 투자 개념에는 사모펀드도 포함된다. 따라서 사모펀드에도 우리 정부는 모든 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ISD의 대상이 된다.
ISD가 논쟁의 중핵이 되면서 정부 쪽의 변명 역시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과도한 주장이 남발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낸 ‘한-미 FTA의 공공정책 자율권 확보현황 자료’를 보자.

   
 
여기에서 보듯 정부 쪽은 ‘협정의 적용배제’라는 이름으로 예컨대 국민연금 등 4대 보험과 8개 국책금융기관을 들고 있다.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그 해당 조문인 금융부문 제13.1조 제3항을 보자.

   
 
예컨대 국민연금 등에 대해서는 ‘이 장’ 곧 협정문 제13장 금융 서비스만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가호 아래에 달린 단서를 잘 보자. 결국 이런 말이다. 국민연금이 국내외 여러 자산운용사에 위탁운용한 자금, 즉 경쟁이 허용되는 범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ISD를 포함한 제13장 금융부문의 각종 의무가 적용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는 말은 과장된 잘못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서도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과장된 것이다.
해당 제13장의 ‘부속서한’을 보면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 “제13장의 적용을 받으나 그 장의 목적상 금융기관으로 간주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8개 기관이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제13장의 적용을 받는다는 의미가 뭘까. 제13.1조에 규정된 13장의 적용 범위를 살펴보자.

   
 
이 부속서한의 의미는 8개 국책금융기관이 제13.1조 1항 가호에 규정된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이들이 향후 상장되거나 특히 민영화될 경우 13장은 물론이고, 위 나호와 다호에 따라 11장 투자, 12장 서비스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엄연한 협정문상의 규정을 제쳐두고,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과장됐다. 앞에서 든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 쪽이 주장하는 상당수의 ‘적용배제’  ‘유보’  ‘예외’ 등에 관련된 것들은 사실에 정확히 부합되지 않거나, 다분히 과장된 것들이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단서조항들을 언급하지 않거나 누락시키고 있다.

4대 보험·국책금융기관도 제소 대상
정부는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협정문 11장과 같은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로 직접투자만 언급한다. 주식·채권 등과 같은 간접투자 통계는 잘 안 보인다.
2010년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2002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2배 정도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증권투자는 6배 정도 증가한 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증권투자는 3배에 못 미치는 정도로 늘었다. 그래서 한-미 간 직접투자 규모는 상당히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간접투자는 규모에서 2010년 기준 미국이 한국보다 5배 정도 더 많다. 문제는 한-미 FTA 투자·금융 부문은 이 모든 부문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예컨대 KT에 투자한 영미계 사모펀드나 론스타 등이 모두 직접투자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물며 투기성이 강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증권투자가, 한국에 대한 전체 투자액의 약 75%(2010년 기준)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투자·금융 부문이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이 지난 11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투기성 자본의 ‘먹튀’ 더욱 활개 우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처럼 이른바 공장설립형(그린필드형)으로 진출한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미국 경제의 선순환을 지지하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막상 현대·기아차가 진출한 미국의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는 지금까지 미국이 체결한 FTA를 승인한 예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주법상의 투자자 보호를 현대·기아차가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한-미 FTA는 수출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한국에 대해 ‘외국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ATM Korea)’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너무 높다(30% 이상 차지)는 데 있다. 금융시장이 과도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미 FTA는 이 경향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든다. ISD나 역진방지 메커니즘(한번 개방하면 다시 후퇴할 수 없는 래칫 조항) 등으로 인해 ‘ATM Korea’는 항구화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한국의 주식시장은 ‘글로벌 호구’가 될 판이다.
최근 월가 점령시위는 1%도 안 되는 월가 ‘금융귀족’들이 미국을 점령한 데 대한 일대 반격이다. 한국은 어떨까. 시중은행 대부분이 영미계 외국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리고 상위 50대 기업의 외국인 주식 비중을 보면 KT&G·NHN·포스코는 50%를 넘고, SK텔레콤·삼성전자·KT는 50%에 육박한다. KT는 자사주 비율을 제외하면 50%를 넘는다. 한국 경제의 주도권은 월가가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에 대한 월가(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권을 더욱 공고화하고 나아가 ‘역진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2hae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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