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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와 까까머리
[이순원의 마음쉼터]
[19호] 2011년 11월 01일 (화) 이순원 economyinsight@hani.co.kr

이순원

   
 
독서라면 으레 책으로 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아마 앞으로도 오랜 세월 종이는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또 전달할 것이다. 예전엔 책을 사려면 서점으로 나가 구입하거나 주문을 했다. 요즘은 인터넷이 그 일을 대신해준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는 내겐 참으로 좋은 세상이 온 것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보내고 받고, 또 컴퓨터로 작품을 읽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작가생활 초기엔 원고지 위에 펜으로 글을 썼다. 다음에는 그보다 능률적인 타자기로 바꾸었고, 컴퓨터와 타자기의 중간 형태쯤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이후엔 모든 작업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예전의 ‘글쓰기’가 ‘글치기’로 변한 것이다. 작가생활 25년 동안 펜에서 타자기로, 워드프로세서로, 컴퓨터로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동양의 필기구가 붓에서 펜으로 바뀐 것만도 2천 년 세월이 흘러서인데, 지난 25년간 내가 겪은 변화는 그보다 더 무쌍하다.  
그런 세상 변화 속에 요즘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인터넷 동창 카페다. 한 해 졸업생이 쉰 명도 채 되지 않는 궁벽한 산촌의 학교인데 동창 간의 유대가 각별하다. 너와 나로 학교에서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누구 집 몇째 아들과 누구 집 몇째 딸로 학교에서 만났던 것인 만큼 집안의 부모와 형제들도 다 알고 안부를 나눈다. 전형적 농경사회 속에서 유년을 보내고, 또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 동창이라기보다는 한동네, 한 대소가의 육친 같은 사이들이다.
얼마 전 인터넷 동창회에 저마다 가지고 있던 자신의 옛날 사진을 올렸다. 졸업앨범 대신 받아든 단체사진 속엔 까까머리 친구가 더 많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두 명뿐, 대부분이 ‘진짜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볼수록 앙증맞은 추억의 코고무신을 다시 본 것도 그곳이고, 귀 중간까지 깡총하게 올라간 원단의 단발머리 소녀를 다시 본 것도 인터넷 동창회에서였다.
마을에 자동차가 한 대만 들어와도 공부 시간에 모두 밖으로 나가 그것을 구경하던 시절이 40년 전에 있었다. 봄과 여름, 가을엔 아예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었고 땅이 꽁꽁 언 겨울에야 냇가를 따라 국유림에서 벤 나무를 깔고 그 나무를 실으러 산판차가 들어왔다.
그때의 산골 소년이 40년 뒤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컴퓨터로 그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며, 또 책이 아닌 컴퓨터로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내려받아 읽고,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까마득히 잊었던 40여 년 전 단발머리와 코고무신을 추억하고 있다.
앞으로 30년 뒤엔 또 어떤 세상이 올까? 문명이나 문화의 발전 속도로만 본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중엔 오히려 그 나아짐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숨 막히게 하지는 않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저 코고무신의 단발머리 소녀들과 검정고무신의 까까머리 소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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