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사생아 같다.” 책이 도착했다. 연구원들의 축하말에 섞여든 내 혼잣말이다. 지난해 여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연구원으로 출판사(상상너머)에서 찾아왔다. 분량이 꽤 되는 교정지를 들고서. 프레시안 사회교양원에서 강연한 내용을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로 만들었단다.
‘프레시안의 강연을 책으로 만들어도 되느냐’는 말에 선뜻 응한 건 그 이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강연이 한데 묶인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라든지 <자존심>(한겨레출판사), <거꾸로 희망이다>(참언론시사인북) 등이 그런 책이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 사이에 한 꼭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동시에 출판사나 독자에 대한 내 책임은 바닷가의 모래알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두 번에 걸친 4시간의 강연으로 책 한 권이 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승낙했고, 반 이상이 즉흥적으로 진행된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출판사의 노고를 어떻게 한마디로 물거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정태인’ 이름으로 된 첫 단행본
강연록의 한 꼭지, 공저의 논문 하나로 내 이름이 책에 나온 적은 꽤 있지만 표지에 홀로 등장하기는 처음이다.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가 100쪽밖에 안 되는 책 딱 한 권(<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만 남겼다는 신화는 20대 얼뜨기 경제학도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그런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으니 남의 논문이나 책에 얼마나 가혹했겠는가? 서정주식으로 말하면, 8할이 질투였을 객기 탓에 난 마감이 없는 글은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박사 학위마저 그랬으니(석사 학위도 7년 만에 지도교수의 강권 덕에 냈다) 내 이름으로 된 단행본이 나올 리 없다. 선인세를 3년 전에 받고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딸과 함께 쓴 경제학>도 마찬가지다(출판사 레디앙에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책의 핵심은 사회경제의 근거를 인간의 ‘신뢰와 협력’에서 찾은 것이다. “사생아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게다.
책의 핵심은 사회경제의 근거를 인간의 ‘신뢰와 협력’에서 찾는 것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심상정 의원은 ‘세 박자 경제론’이라는 걸 내놓았다. 현실의 경제는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당시에는 ‘풀뿌리 경제’라고 불렀다)의 세 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장경제는 경쟁(또는 등가교환)을 통해 효율성을 주된 목표로 하고, 공공경제는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달성해야 하고,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바탕으로 연대(Solidarity)를 이뤄내야 한다. 각각 ‘시장-국가-시민사회’라는 3분론에 들어맞고,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박애라는 기치에 해당되니 꽤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경제’라는 개념이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199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활발히 논의됐지만 엄밀히 이론적 정의에 합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스스로 이론적 근거를 찾아야 했는데, 1년여 고투한 결과가 ‘사회경제론’(<리얼진보>·2010)이었다.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아마 세계 최초로 사회경제의 근거를 ‘신뢰와 협력’이라는 인간 본성에서 찾은 글일 것이다. 사회경제라는 역사적 실체의 이론적 근거, 1980년대 이래의 대규모 실업과 복지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사용돼온 개념의 근거를 진화생물학·심리학,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의 최근 논의에서 찾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수준이었고, 최정규 교수의 책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경제학·사회학·정치학·심리학에서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논문을 읽었지만, 한 달에 수백∼수천 건의 논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논의를 깔끔히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신뢰와 협동’이 불가결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고,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생협과 사회적 기업, 공동체운동이 활성화됐다.
　
협동은 인류 멸망 막은 선현들의 지혜
사회딜레마란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바꿔 말해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한다.
이 분야의 연구는 일천하지만 어쨌든 답은 ‘협동’(Cooperation)으로 결론 났고, 어떤 조건에서 협동이 가능한지를 밝히는 것이 현재의 핵심 과제다. 노박(Nowak)의 수학에 의한 논리적 결론이든, 아니면 전세계 공유지의 역사를 천착한 엘리너 오스트롬의 결론이든 마찬가지다. 한참 공부하고 나서야 인류가 여태 멸망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한 비결은 협동이고, 그것은 선현들의 지혜와 다름없다는 걸 깨달았다. 답은 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딜레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다. 경기침체에서 쉽게 빠져나올 것 같지 않고,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 나라들이 제시간에 기후변화 문제의 해법에 동의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위기의 해법으로서 협동’은 적어도 10~20년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에 장점이 있다면 바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혼잣말을 들은 한 연구원이 위로했다. “그런 애가 효도하는 법이에요.” 정말 그렇게 돼서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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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책꽂이

그림자시장
김정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 2만원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세계시장을 분석했던 저널리스트 에릭 J. 와이너가 현재 진행되는 글로벌 경제 재앙을 기회로 이용하는 ‘그림자시장’을 분석한 보고서다. 와이너는 현 경제위기를 미국·유럽 중심이던 세계경제의 주도 세력이 바뀌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하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수조달러 규모의 투자기관 네트워크를 집중 분석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한상연 옮김 | 부키 펴냄 | 1만5천원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노동전문 변호사인 토머스 게이건이 미국과 독일의 복지제도를 비교했다.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미국이 사실은 사회안전망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무한경쟁 사회인 데 비해, 유럽의 강국 독일은 ‘1년 6주의 휴가’ 등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음을 저자의 체험 등을 통해 보여준다.
 

큐레이션
이시은 옮김 | 명진출판 펴냄 | 1만6천원
온라인 최대 동영상 큐레이션 플랫폼인 ‘매그니파이닷넷’(magnify.net)의 창시자인 스티븐 로젠바움이 소셜미디어 시대의 성공 비결로 ‘정보의 큐레이션’을 제시한다. 포털 뉴스, 파워블로거, 애플리케이션, 위키피디아 등 넘쳐나는 정보를 구글 등 검색엔진에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진핑
이용빈 옮김 | 한국경제신문 펴냄 | 1만6천원
일본의 중국 전문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소마 마사루가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 중국 부주석을 대해부했다. 시진핑은 180cm의 큰 키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교활한 카리스마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13억 중국인의 일인자 자리를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시진핑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지 점쳐본다.